1. 조선후기 대표적인 탐관오리 ¶
어느날 조병갑이 모친상을 당하고 부조금으로 2000냥을 걷어오라고 요구했는데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이 대표로 나서서 항의하다가 곤장에 맞아 죽는일이 벌어진다.
2. 가족관계 ¶
- 아버지 : 조규순(趙奎淳), 태인군수를 지냄
- 어머니 :
- 형 :
- 부인 : 전주이씨 이병양(李秉兩), 판서 이병문(李秉文)의 딸
- 아들 : 조강희(趙岡熙, 1889~?)
- 부인 : 청송심씨 부사 심영규(沈永奎)의 딸
- 아들 : 조찬희(趙瓚熙, 1880~?) 진사 역임
- 딸 : 김태규(金泰圭)에게 시집감
- 증손녀 : 조기숙(1959~)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,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국제학전공 부교수
- 큰아버지 : 조두순(趙斗淳, 1796년 ~ 1870년) 영의정을 지냄.
- 친족 : 조병식(趙秉式, 1832년 ~ 1907년)
- [1] 광산보, 혹은 민보라 불린다
- [2] 참고로 현재 만석보가 있던 자리는 지방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곳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이 '만석보지(...)'이다.. 만석보'터'라고 했으면 읽는 사람도 민망하지 않을텐데...유흥준 교수가 저서 '나의 문화유산답사기' 2권에서 민간차원으로 세웠던 만석보유지비(萬石洑遺址碑)와 비교하며 자세히 논평해놓았다.
- [3] 과도한 이라고 썼지만, 사실 과도한게 아니라 아예 필요없는 보를 만들어 물세를 만들어 냈다!!
- [4]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총독부 통감으로 부임한 후 침략 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06년 창간한 통감부 기관지다.